다음 글은 가덕도문화관광해설사로 근무하는 조유례님의 [사라질 수 없는 마을, 지켜야 할 장소 ‘외양포 포진지’]라는 글입니다.
외양포 마을은 사라질 수 없는 마을이다. 그 이유는 우리가 지켜야하기 때문이다. 2014년 겨울, 외양포 마을을 처음 가보았다. 시간이 멈춰버린 느낌이랄까. 마을의 모습은 마치 흑백사진 속의 모습이었다.
1904년, 평화롭고 한적한 어촌마을은 순식간에 나타난 일본군에 의해 지금의 마을 모습이 되어버렸다. 마을 주위 곳곳을 보고 있노라면, 당시 발버둥치며 저항했던 마을 주민들의 아우성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100년이 넘은 건물들은 세월의 무게를 견디지 못한 빛바랜 비늘판벽, 처마끝 물받이통, 우물, 등 마을 곳곳에 뿌려진 역사적 흔적들은 우리 자신을 돌아보게 한다. 외양포 마을은 담장, 대문이 없는 마을이다. 마을 주민들은 과거의 흔적들을 그대로 간직한 채 살아가고 있다. 가끔, 해설을 위해 집안 내부에 들릴 때가 있는데, 어두운 과거가 남아있는 집과 친절한 주민들의 모습이 대비를 이뤄 묘한 감정이 든다. 처음 해설을 시작했을 때, 본격적으로 전쟁 해설을 하리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포좌’, ‘관측소’, ‘유탄포’, ‘탄약’ 등 살아가면서 쉽게 접하기도 어려운 말이었다. 하지만 외양포 마을과 포진지 해설에 익숙해질수록 사명감이 들었고, 전쟁 해설에 있어서도 전문가가 되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외양포 마을에 새겨진 흔적들은 쉽게 잊혀질 만한 것들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이제는 일본에게 지지 않겠다는 젊은 장병들의 매서운 눈매에서 해설사의 보람을 느끼기도 했다. 많은 세월이 흘렀지만, 일본이 할퀴고 간 흔적들은 부산 강서구에도 고스란히 남아있다. 한국을 대하는 일본의 방식, 태도, 행동 역시 큰 변화가 없다. 그래서 가덕도 역사문화 해설사로서의 역할은 간단하다. 가덕도를 방문하는 분들에게 우리의 아픈 역사를 설명하여, 다시는 이러한 과거를 되풀이하지 않도록 하는 일이다. 특히, 포진지를 방문하시는 분들의 표정을 살펴보면 분노의 기색이 역력하다. 한반도를 전쟁의 도구로 여겼던 일본의 태도가 포진지에 그대로 녹아있고, 이는 우리에게 분노의 감정을 일으키는 촉매제 역할을 한다. 그래서 가덕도 포진지를 방문하시는 분들은 세 번 놀란다. "100년이 넘었다는데(포진지) 놀라고, 포진지 시멘트 공법 단단함에 놀라고, 완벽한 엄폐시설에 놀란다."
가덕도 해설은 독특하다. 가덕도가 잔혹한 참상이 벌어졌던 역사적 장소나 재난·재해 현장을 돌아보는 여행인 다크투어의 핵심지이기 때문이다. 해당 지역은 한일 양국의 과거사가 얽혀있기에 해설사는 해설 뿐만 아니라 치유의 역할도 담당해야 한다. 분노와 놀람의 감정을 그대로 간직한 채 떠나려는 분들을 위로하고, 미래를 향해 내딛을 수 있는 이유를 제공하는 일, 그것이 바로 강서문화 해설사로서 내가 해야 할 역할이다. 휘몰아친 역사의 현장 포진지 대나무는 여전히 푸르고 마을 헌병대 건물 앞 가을에 꽃이 피는 큰 참식나무는 진한 향기를 뿜어내며 방문객들의 발걸음을 붙잡는 지금은 평화로운 마을이다.